조경호/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사무처장
우리는 흔히 '쌀값은 농민값'이라고 한다.
쌀이 그만큼 농민들에게 있어서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농민이 그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쌀이 나타내 준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비록 그동안 우리 사회가 저곡가 정책을 통하여 농업을 경제성정의 희생양으로 삼아오기는 했으나 쌀값(추곡수매가)을 정하는 시기만큼은 농민들의 노고에 어느 정도 보답을 해야 할지의 고민은 있었다.
최소한 충분한 보답을 못해 주는데 따른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사회적 의식이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식량을 책임진 농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수매가가 동결과 소폭인상을 오가더니 급기야는 헌정사상 유래 없는 수매가 인하 방침을 정부가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정부는 이제 쌀이 우리사회에서 귀찮은 존재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 같다.
충격적이다.
일반적 가치평가로 내몰 수 없는 쌀
쌀값이 왜 더 올라야 하는지, 농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따위의 말은 다음에 하겠다. 필자가 격분하는 것은 이 나라 정부가 드디어 쌀을 포기하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는 것이며, 우려하는 것은 '혹시나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의식으로 자리 잡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쌀은 귀한 것이 아니라 주위에 넘쳐나는 것이며 그래서 시장원리에 의해서 값도 싼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과 밥은 바쁜 현대사회에서 패스트푸드에 비해 꼬박 챙겨먹기에는 귀찮고 비효율적인 것이며 왠지 먹으면 살만 찔 것 같고 서양음식에 비해 고급스럽지 못한 것 같은(그래서 연속극에서 중류이상 사람들의 식사 장면은 빵과 양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쌀에 대한 가치를 계속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이 필자는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다.
당연히 농민에 대한 생각도 평가절하 되고 있다. 기성세대가 가졌던 농민에 대한 심정적 지지심리가 갈수록 희박해 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언제가 필자는 독자들에게 농업은 국민이 지켜줘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쌀과 농업에 대한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고 보호 의무를 사회적으로 합의해 줄 때 농업은 유지되는 것이다.
쌀을 버리려는가?
이번 정부의 정책은 분명 쌀과 농민에 대한 사형선고이다. 정부는 손을 뗄테니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쌀문제 만큼은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정권을 인수받기도 전에 이미 쌀은 회생할 수 없는 선을 넘기고 만 것 같다. 추곡수매가 인하 외에도 추곡수매정책 포기(공공비축제로의 전환), 생산조정직불제(휴경제)등의 발표는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기 전 현정권이 악역을 맡아 쌀시장개방과 그를 전제로한 구조조정 기반을 마무리하고 새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망칠 것 다 망쳐놓고 어떻게 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농민에게 희망을 주는 선택은 언제나?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이제 국민들의 참여를 통해 정치를 만들어 나가는 실험을 하였다. 그리고 그 성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국민들의 참여는 일회적 투표행위뿐만 아니라 중요 현안에 대한 참여와 제시로 나타나야 한다. 쌀 문제에 국민이 나서야 한다.
이는 농업계에 대한 부조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곡간을 남에게 넘기지 않고 보호 받아야 할 권리가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생산을 담당하는 농민에 대한 보호요구는 국민의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이 땅의 농민들에게도 희망을 주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