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리/ 전북지역 일반노동조합 위원장

얼마 전에 우리들한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었다.
그토록 소망했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노무현대통령 당선자가 적용시켜나가겠다는 거였다.
그 소식이 신문 1면을 커다란 글씨로 장식했던 그 날, 우리들은 잠시나마 노무현씨를 예뻐했다. 그리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만이라도 적용된다면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받아왔던 서러움도 한꺼번에 잊기로 했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또 며칠이 지나면서 그가 치켜들었던 꼬리를 차츰차츰 내리까는 것을 보면서 김칫국부터 마셨던 우리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사실, 우리에게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보다 더 시급하게 해결할 일이 있다. 1년 마다 어김없이 찾아와 우리의 피를 말리는 것, 1년 단위 재계약의 고통이다.
계약만료 1달 전에 받는 계약만료통지서.
그 종이 한 장을 받는 순간 우리는 머리가 아뜩해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꼭 사형선고를 받는 기분이 된다. 요즈음이 그 시기이다.

'계약만료통지서' 비정규 노동자 옭죄는 사슬
비정규직 안에도 여러 부류가 있다. 직접 고용된 계약직, 임시직/간접 고용된 계약직, 임시직이 있다. 그래도 직접 고용된 계약직노동자들은 몇 년 착실히 근무하면 '혹, 정규직으로 되지 않겠냐'는 희망이라도 걸면서 2년 내지 3년을 버틴다. 그러나 간접 고용된 1년 단위 계약직들은 용역회사가 원청회사와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계약만료시기가 되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게다가 재계약한 용역회사에서 '너희들을 쓰지 않겠다. 내가 다른 노동자들을 데려오겠다' 며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우리들의 일자리는 없어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1년단위로 찾아오는 재계약인생이 우리들에게 단지 임금의 차별, 근로조건의 불평등만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년 단위 재계약에 잠 못 이루는 요즘
매일같이 고용불안 속에서 살다보니 우리는 정당하게 요구해도 되는 사항도 주저하는 경우가 많고 당당하게 할 말이 있는데도 눈치보며 못하기도 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그 일을 해야만 쫓겨나지 않을 것 같아 관리자들이 시키는 데로 '머슴과 종'처럼 일을 하게 된다.
하루하루의 직장생활이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한시간 한  시간이 비참함과 번민으로 얼룩진다. 똑같은 시간동안 똑같은 도구를 사용하며 똑같은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간에 빚어지는 이런 비극은 세월이 지날수록 상호간의 인생관과 인간관계 그리고 일상의 모습마저 다르게 만든다.
말 그대로 노예시대나 있었던 노골적인 인간차별 대우가 우리시대, 우리들의 친구사이에, 이웃간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임금차이, 근로조건의 차이를 없애기 위하여 분연히 떨쳐 일어나 노동조합의 모습으로 단결하기 시작했으며 미약하나마 비정규직철폐를 내걸고 지난 일년동안 힘차게 투쟁해왔다.

'이 고통 오래지 않으리'
중소, 영세,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조직이름, 전북일반노조는 이에 가입한 조합원들만의 이해를 달성하기 위하여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북지역 40만 비정규직노동자들, 그리고 소외된 자들이 모여 인간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단결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공동의 요구로 공동투쟁으로 쟁취한 사항을 공동 분배하여 4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서러움을 끝장내려고 지금 이 시간도 노력하고 있다.
요즈음 전국의 1년 단위 계약직노동자들은 재계약시기를 맞이하여 또는 입찰시기를 맞이하여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희망이 사라진 지금,  1년단위 계약직이라도 일자리가 안정되기를 원하고 있을 노동자들, 저임금이라도 좋으니 일자리가 지켜지도록 간절히 소망하고 있을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언젠가는 한번쯤 이 고통을 끝장내기 위해서 우리들은 피눈물나는 투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의 앞날은 우리가 열어간다'
전북일반노조는 창립 당시의 정신, '노동자는 하나다' '나눔과 연대의 공동체' 라는 깃발을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리지 않고 전북지역 비정규직 40만노동자들을 위하여 활동할 것이다.
그리하여 일반노조를 거쳐나간 노동자들이 삶의 의욕을 느끼며 생동감 있게 하루하루를 인간답게 살수만 있게된다면, 지금 이 시간 재계약의 고통으로 움츠러들고 있는 1년 단위 인생,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은 반드시 추억으로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