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사무국장
지난 12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공식성명을 통해 미국의 중유중단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서 지난 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중지해 온 핵시설 가동과 건설을 재개할 것임을 밝혔다. 미국은 이어 북한에 대해 핵개발을 무조건 포기할 것과 구체조치가 없는 한 대화는 없다며 강경대응 입장을 밝혔다. 우리의 생존권과 직결된 한반도 평화문제는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위기국면이 마치 북한의 핵개발 재개로부터 발생한 것인 듯 떠들지만 이것은 한반도 핵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뿐 아니라 새롭게 조성된 위기를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증폭시키는 행위이다.
이미 북한과 미국은 지난 94년 전쟁이라는 극한상황 직전까지 가면서 한반도에서 핵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합의를 맺은 바 있다.
소위 "조미 기본합의"라고 불리워지는 이 합의에서 미국은 핵 비확산 체제 강화를 위해 북한을 핵으로 공격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고 2003년까지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하며 연간 50만톤 규모의 중유를 공급할 것을 약속하였고 그에 따라 북한은 한반도 비핵지대선언의 이행을 단계적으로 실행하고 흑연감속 원자로와 관련 시설을 동결하기로 하였다.
제네바 합의 이행하라
그러나 미국이 '북미 제네바 핵합의'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이번 '북 핵문제'가 애초에 제기되지도 않았다. 부시정권은 지난달 16일 "북한이 켈리 특사에게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인했다"고 주장하는 국무부 성명을 발표하고 핵개발에 대한 구체물증도 제시하지 않은 채 북을 압박하고 동북아시아에서 긴장을 조성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더니 결국 이번 달부터는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들어가 중유공급을 중단하고야 말았다. 반면 북은 지난 10월 2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무기 제조를 목적으로 농축 우라늄 계획을 추진하여 '북미 기본 합의문'을 위반하고 있다"는 켈리 특사의 문제 제기가 아무런 근거 자료도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또 미국이 '북미 제네바 기본 합의문' 4개 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 선제공격 대상에 포함시킨 미국이야말로 '북미 제네바 핵합의'와 '북미 공동성명'을 완전히 무효화시킨 장본인이라고 지적했다.
대북정책 철회하고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라
미국은 무엇보다도 경수로 발전소를 2003년까지 제공하고, 북과 정치적·경제적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 미국은 북에 대해서 핵무기를 사용하지도 위협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국무부 문서로 보증하기로 약속하고서도 이를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북을 핵선제 공격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제네바 합의를 완전히 백지화시켰다.
더욱이 터빈과 발전기를 포함한 비핵부품들이 납입된 다음에 핵사찰을 받게 되어 있는 '제네바 기본 합의문'의 '비공개 양해각서'를 위반함으로서 미국의 조기 핵사찰 강요가 도리어 '제네바 핵합의'의 위반임이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다. 결국 '제네바 핵합의'를 위반한 장본인은 미국인 것이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북 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단순하고 명백하다. 그것은 미국이 북한을 향한 적대정책을 철회하는 것이다. 미국이 '북 핵문제'를 왜곡, 조장하여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고 그로부터 동북아에 대한 군사적 패권을 보다 확고히 다지려는 노림수를 갖고 있지 않다면 핵선제공격 전략 등 대북 적대정책으로 일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스스로를 소국으로 낮추면서 체제보장을 호소하는 북에게 핵위협을 무기로 체제를 위협해 핵무기를 생산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던 북으로 하여금 생존적·자위적 차원의 핵 개발 의지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도록 내몰고 있는 것이 바로 부시정권이 아닌가!
따라서 부시정권이 핵선제공격 전략을 비롯한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한다면 북이 핵을 개발할 이유가 없으며,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은 그것이 비록 핵 강대국들의 기득권을 보장하기 위한 매우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조약이지만 차질 없이 지켜질 것이다. 부시정권은 마치 '북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고 있는 듯이 떠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선 핵포기, 후 대화' 입장은 사실상 북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며, 오로지 북을 힘으로 굴복시켜 보겠다는 입장이다.
평화적 해결 원한다면 폭력적 태도 접어야
상대방의 자주성과 생존권, 그리고 주권을 말살하려는 핵선제공격 계획을 들이밀면서 대화하자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언어도단이다. 부시정권이 진정으로 '북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선 북 핵포기 후 대화'라는 일방적인 주장부터 거두어 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