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식(평화와인권연대 자원활동가)
대한민국 남자라면 한 번쯤은 거쳐야 한다는 '신체검사'를 받고 왔다.
사람들의 몸에 등급을 매겨 그 쓰임새가 얼마나 되는지를 판정하는 것이 '신체검사'의 목적이다.
이것은 내 몸의 소유가 온전히 국가에 귀속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그렇게 되기를 강요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남의 물건을 품평해서 내 쓸모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내 몸의 주인이 따로 있다
나는 신체가 건강해 그 쓰임새가 인정되어(!) 현역입영대상 판정을 받았다. 앞으로 국가의 부름을 받으면 언제든지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신체검사가 등급을 매기는 것 뿐만 아니라 '국가의 부름'에 대한 복종을 개인에게 당연한 사실로 인정하게 하고 그것을 거스를 수 없는 사실로 개인이 받아들여 내면화하고 체념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신체검사를 받는 곳에서 신체검사대상자들은 이미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인간이기보다는 당연히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취급받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반말 세례를 받아야 했다.
걸핏하면 육두문자가 들어간 말이 쏟아졌고 신체검사 진행과정에 조금만 뒤처져도 큰 죄를 지은것마냥 잔소리와 꾸중을 들어야만 했다.
신성한 의무와 모독당한 인격
대체 우리는 왜 신체검사를 받는 것인가? 보기좋게 꾸며진 논리를 들어보자면 자랑스런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는 신성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이다.
그럼 그 신성한 의무를 다하려는 숭고한 신검대상자들을 왜 그들은 철저히 무시하고 인격적으로 모독을 하는 것인가.
그 모순되는 논리는 어느 한 쪽을 부정하면서 깨뜨릴 수 있다. 그것은 국방의 의무에 대해 우리가 받아들일 때 신성한 의무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과 그들이 신검대상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게끔 하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의무가 신성한 의무가 아니라는 걸 택해서 그 모순을 깨뜨리려고 한다. 신체검사는 겉으로는 잘 꾸며진 국가의 의무이고, 신성한 의무일지 몰라도 이미 그 신검대상자를 바라보는 국가의 시각에서 그들은 소모품 내지 소유물에 불과하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대한민국에서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 체제적 모순을 가리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지 국가 방어적 의미는 이미 상실한지 오래다.
대한민국의 군사주권이 미국에게 있음은 이번 두 여중생의 사망 사건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 사실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보통 이야기하는 '북한의 남침'을 막을 수 있는 전쟁 억지력에 비해 터무니 없이 거대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군사 전문가들을 통해 알려진 객관적인 사실이다.
나는 국방의 의무를 신성한 의무보다는 감히 '개같은 의무'라고 부르겠다. 매년 수십만 젊은이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 정권과 자본의 영속을 위해 희생시키는 개같은 의무. 매년 수천명의 정신병 환자를 만들어 내며 건강한 젊은이와 사회를 황폐화시키는 개같은 의무.
매년 수백명의 사망자를 쏟아 내며 부모 친지와 생이별하게 만드는 개같은 의무.
상식적 병역거부 운동을 제안한다
대한민국 국방의 의무는 결코 나를 지키기 위한 것도,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국방의 의무를 상식적 차원에서 거부하는 상식적 병역거부 운동을 제안한다.
[평화와인권] 3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