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 92조의 6,
군대와 인권의 관계를 다시 묻다.
오리(동성애자인권연대)
군형법 제92조의6은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규정으로 강제성 없는 남성 군인 간 성적 행위를 징역형으로 규율하고 있는 대표적인 성소수자 차별 법안이다. 2013년 4월 5일 군형법이 개정되기는 하였지만 남성 간 성행위를 비하하는 ‘계간(鷄姦)’이라는 용어가 ‘항문성교’로 대체되었을 뿐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관계를 범죄화하고 있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정부는 ‘군의 특수성’을 내세우며 이 법안이 폐지되면 비정상적인 성행위가 만연해져 군 기강이 위협받고 군전투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징병제 국가인 이스라엘과 대만을 포함한 세계 20여 개국은 이미 군대에서의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진급이나 복지에 있어 그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고 있다. 군대에서 동성애자를 인정한다고 해서 동성애의 만연, 군 기강 문란, 성폭행 급증 등의 상황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우려는 그저 인권이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하고자 만들어낸 국방부의 관료주의적 변명일 뿐이다.
국가가 군복무관계와 같은 특별권력관계에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먼저 기본권제한의 구체적인 방법과 정도를 특별권력관계의 설정목적과 성질 및 기능 등에 따라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때 과연 그러한지를 따지는 법리가 과잉금지원칙인데, 즉 인권을 제한하는 입법목적이 정당한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합한 수단을 택하고 있는지, 그 수단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는지,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제한을 받는 인권과 그 인권을 제한함으로써 얻는 이익 간에 적절한 균형관계가 형성되었는지, 네 단계의 심사기준을 모두 하자 없이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적의 카드처럼 쓰이고 있는 ‘군의 특수성’이라는 모호한 근거는, 사실 이 네 단계의 심사기준이 제한하는 범위 안에서만 유효하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국제인권기준 및 인권에 관한 국내법에 비추어봤을 때 이미 폐지되었어야 할 법이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 2012년 UN 국가별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에서도 이 조항의 폐지를 검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동성애를 범죄화하는 법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성소수자 개인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고 있다.
동성애자가 괴물, 변태성욕자, 잠재적 성추행범, 에이즈 바이러스 덩어리 등으로 불리며 가장 노골적으로 차별에 노출되는 곳은 바로 군대이다. 복무기간 2년 동안, 군대는 차별에 노출되는 동성애자 사병은 물론 그러한 차별을 지켜보는 다른 사병들에게까지 “해도 되는 차별도 있다”고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군에서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잃는 것이다. 군대에서 겪은 인권에 대한 경험은 사회에서의 인권감수성을 결정한다.
“혁명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지난 6년 간 동성애자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급격히 증가한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으로, 2007년 18%에서 2013년 39%로 21%나 증가했다고 한다.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맞물려 작동되기 위해서는 때로 매우 상세한 규범이 필요하고, 그 규범의 체계를 수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권증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며, 사회는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인권을 군대에 요구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긍정적 측면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는 실제로 다른 많은 국가에서 취하고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성소수자 사병의 인권 증진을 위한 첫걸음은 군형법 92조의 6이 명시하고 있는 동성애 처벌법을 폐지하는 것이다. 물론 군형법 92조의 6이 폐지된다고 해서 군대가 성소수자 친화적인 공간으로 한 순간에 바뀌진 않을 것이다. 군 인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적극적으로 저항한다면, 자살과 총기난사를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