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만나는 혐오표현은 왜 더 아플까
예정(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책담론팀장/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동성애가 에이즈를 유발한다” (20대 총선, 기독자유당)
“할랄단지를 조성하면 대한민국이 테러 위험국이 된다” (20대 총선, 기독자유당)
“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니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가 아니라 엄벌을 해야한다” (19대 대선, 홍준표 후보)
“서울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조항을 삭제하겠다” (제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시장 김문수 후보)
위 문장들은 실제 선거에 나왔던 문구와 발언들이다. ‘아 정말 안되겠구나’싶은 한편 이런 발언은 인터넷 댓글창에도 심심찮게 보이고,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는데 선거때의 혐오표현은 특히 더 문제된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
정치인들이 가진 발화 권력
정치인들의 발언은, 누가 언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쉽게 언론에 실리게 된다. 이제는 사회의 명백한 이슈로 부상한 혐오표현은 그 정도에 따라서 수위를 구분하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한 혐오표현은 실제 소수자에 대한 테러로 이어질 수 있는 증오선동이다. 정치인들의 발화 권력을 생각하면 그들의 혐오표현은 일반인들의 혐오표현보다 쉽게 선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령 “국가에 기여한 바 없는 외국인에게 자국민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법개정을 통하여 이를 시정하겠다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발언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표출할 빌미를 제공한다.
정치인들의 발언이 대중에게 더 많이 가 닿는 것도 소수자와 소수자 집단에게 위협이 되는 중대한 요소이지만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의원들이 하는 일이 법 제정과 정책 집행이라는 것도 큰 위협이 된다, 앞서 언급한 황교안 대표의 발언은 실제 나의 생계와 관련하여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발언이다. 성소수자 청소년에게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차별 조항을 삭제하겠다는 김문수 전 후보의 발언은 나의 존재가 학교 현장에서 지워질 수도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동성애는 에이즈를 유발한다, 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니 엄벌에 처해야한다는 홍준표 전 후보를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들의 이 발언들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감추게 만드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선거라는 특수한 시기를 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발언들이 선거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있지만, 선거를 통하여 국회에 간 이들이 자신들이 한 혐오표현을 실현하기 위한 입법활동을 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발의된 국가인권위원회법 일부개정안만 보더라도 노골적인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해온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삭제하려 시도하였다.
선거에서 혐오를 몰아내려면
선거시기에 혐오표현을 몰아내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단연 선거관리위원회이다. 이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의견서를 전달하였고,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도 의견표명을 통하여 정치인 혐오표현에 관하여 선거관리위원회도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 선거관리위원회의 답변은 일관되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회가 움직여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예상하고 시민사회가 요구한 것은, 예방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예컨대 선거와 관련한 선전문구로 ‘혐오 없는 선거’를 채택한다거나, 후보자와 정당에 발송하는 공문, 자료집 등에 혐오표현의 정의를 설명하며 이러한 문구와 발언은 자제하라는 내용을 수록하는 것 등을 요구하였다. 의견서를 전달하는 면담자리에서 선거관리위원회는 검토해보고 답변주겠다 하였으나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묵묵부답이다. 이러한 예방적 차원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실상 21대 총선에서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어떠한 역할을 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이러한 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보다도 중요한 것은 후보자가 혐오는 표가 될 수 없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일례로 더불어민주당 총선기획단은 혐오발언한 의원에게 공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이 발언의 효과는 적어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그리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의원들에게 혐오발언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인지를 확실히 시켰다. 이러한 총선기획단의 기조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혐오발언하는 의원들에게 항의하고, 인권의 가치를 훼손시키려는 의원들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해온 전국 곳곳의 시민들이 일구어낸 것이다. 정치는 결코 스스로 정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1월14일 선거관리위원회에 시민 364명과 53개 단체와 2곳의 연대체의 연명으로 제출된 ‘혐오 없는 선거를 위한 시민들의 요구안’과 12월3일 시민 2,172명과 266개의 단체 그리고 3곳의 연대의 결의로 제출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악안 발의에 서명한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 요구안’은 큰 의미가 있다. 인권의 편에 서는 이들의 목소리는 미디어에 크게 부각되지 않기에 직접 정치권에 이러한 목소리를 끊임없이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씩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정말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작지만 끊임없는 행동들은 분명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얼마 전인 11월 1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선거시기 혐오표현 예방을 요구하는 면담자리를 가졌다. 면담자리에 나온 공무원들에게 선거시기 정치인들의 혐오표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이 적어도 혐오표현이 무엇인지 정도는 인지를 하고 있었다. 직전 지방선거와 그 이전 20대 총선때만 하더라도 혐오표현에 대한 의견을 전하려면 그것이 무엇인지 한참 설명을 해야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3,4년 사이에 이만큼은 변화한 것이다. 별거 아닌듯해보이지만 이 작은 차이는 사회가 얼마만큼 혐오표현에 대하여 인지하기 시작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라고 지적하는 끝없는 말하기가 사회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당신들의 그 말은 잘못되었다. 우리는 혐오와 손잡는 정치인을 뽑지 않겠다.”는 선언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가 조금씩 사회를 변화시켜온 말하기의 힘을 믿자. 그렇게 혐오 없는 선거를 앞당기자.
*혐오표현에서 말하는 혐오는 일시적이고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소수자집단에 대한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관념이나 감정을 뜻한다. 혐오표현은 소수자 그리고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이다. 부정적 의견표시부터 소수자를 모욕ㆍ조롱ㆍ위협하는 것, 소수자에 대한 차별ㆍ적대ㆍ폭력을 정당화하거나 고취ㆍ선동하는 것 등까지 혐오표현의 범주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혐오표현은 표적집단인 소수자를 향한 공격이기도 하지만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즉, 혐오표현은 선동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서 일반청중들을 향해 ‘소수자를 차별하라’고 하고, 실제로 그런 결과를 야기하는 것이다.(홍성수, 선거과정에서의 혐오표현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 발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