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의 기준에서 이제는 탈시설을 말하자. 장수벧엘장애인의집 인권침해 피해자 지원을 통해 본 탈시설 권리

박숙경 교수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한독심리운동 학회장. 2004년 탈시설운동을 시작해서 이 과정에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과 탈시설정책위원회를 동료들과 함께 설립, 정책연구와 실천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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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벧엘의집에서 다른 시설로 전원된 분들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2003년 여름이 생각납니다. 양평의 한 미신고시설에 갇혀 지내다가 나온 뒤 그곳의 실상을 고발하려다가 다시 갇힌 한 남자. 그분을 찾아뵈러 동료들과 양평의 그 시설을 찾아 나섰던 그날도 오늘처럼 여름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시설에 갇힌 목소리가 지워진 사람들을 보았고 저와 제 동료들은 그 현실을 바꾸고자 탈시설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그 시설을 폐쇄시켰지만 그 곳에 갇힌 2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삶을 챙겨드리진 못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다른 시설로 재수용되었을 겁니다. 그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네요.  이번엔 더 나은 지원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또다시 길을 나섭니다. 

 - 2019. 8. 29 전주행 기차 안에서 -

장수 벧엘의집의 실상

전북 장수에 있는 장수벧엘의집(이하 ‘벧엘의집’)에서의 인권침해상황이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장애인자립공동체로 알려져 온 벧엘의집의 실상은 ‘설립자, 이사장, 목사’의 직책을 가진 ‘서정’이란 사람과 그의 아내와 아들이 다스리는 작은 왕국이었다. 길게는 수십 년 짧게는 수년 동안 이 작은 왕국에서 ‘거주인 또는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상시적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자유와 자율을 제한당한 채 예배 강요, 폭행, 성희롱’에 시달렸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갔다면 이룰 수 있었던 여러 경험과 발달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벧엘의집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들

사실 벧엘의집 사건은 ‘이야기하기조차 식상할 만큼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사건 중 하나’다. 그렇다. 시설 비리 및 인권침해 양상만 놓고 보면 벧엘의집 사건은 그동안 문제가 된 다른 시설 비리 및 인권침해 사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사건진행과정을 놓고 볼 때 벧엘의집 사건은 기존 사례와 다른 또는 기존 사례들을 넘어서서 주목해야 할 세 가지 특징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복지전문가로 이뤄진 이사들의 무책임함과 무능력함, 제도의 한계가 드러나다

벧엘의집은 15명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작은 장애인거주시설로 이들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주변의 산지 등을 개간해온 사회복지법인이다. 작은 규모의 법인이지만 이 법인의 이사들은 전라북도 지역의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 또는 인사들이었다. 필자는 이처럼 작은 규모의 단 한 개의 시설을 운영하는 법인이 이렇게 이사진이 화려한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의 필자가 접한 문제 법인들의 이사진들은 대부분 설립자인 이사장과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벧엘의집 이사들은 장애학 전공 교수, 전라북도복지관장, 현 장수군수 등 장애인 인권에 있어서 신망과 인지도가 높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이후 이들은 ‘빠르게 사임하고 도망간 사람들’과 ‘조금 버티다가 사임하고 도망간 사람들’ 두 부류로 나눠졌을 뿐이었다. 전자는 사건이 터진 직후 사임하고 ‘몰랐다’며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간 이사들이고, 후자는 그나마 책임을 지겠다며 비대위를 꾸리고 뭔가 해보는 듯하다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사임한 이사들이다.

상식적으로도 복지전문가가 사회복지법인의 이사를 맡았다면, 그 법인에서 운영하는 시설의 실상과 그 시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황이 어떤지 관심을 갖고 파악했어야 했다. 설사 이런저런 이유로 몰랐다 치더라도 이번 경우와 같이 실상을 알게 되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피해배상과 보상 및 지원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이렇듯 벧엘의집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도덕 불감증, 무책임, 무능력, 그리고 법제도의 한계와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둘째, 대책위원회의 추진력과 연대, 헌신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다.

이번 사건에서 다행스러운 건 지역사회 시민사회단체와 관련 기관, 전라북도가 민관합동대책위를 구성하고 사건을 전라북도 주도로 풀어가는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책위 활동의 근간에는 오랫동안 전북지역에서 자림원 사건을 풀어왔던 송기춘 교수와 김윤태 교수, 도가니와 염전노예사건 등을 조사했던 한국심리운동연구소를 위시한 관련 기관과 단체, 탈시설 자립생활운동을 전개해 온 강현석 소장을 위시한 장애당사자 활동가와 IL센터, 그리고 풍경활동가를 위시한 전북평화인권연대 등의 지역시민단체의 경험과 헌신, 여준민 활동가를 위시한 중앙탈시설운동단체의 지원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전라북도 인권센터의 결합이 하나의 힘이 되고 있다.

대책위의 노력이 없었다면 벧엘의집 사건은 ‘작은 시설에서의 인권침해 사건 중 하나’로 치부되어, 대충 피해자 몇 명을 타 시설로 ‘전원조치’하고 끝내거나, ‘시설을 폐쇄하는 것’으로 끝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가 잠잠해지면 해당 법인과 운영자는 포장을 약간 바꾼 뒤 유사한 사업을 계속해 나갔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설과 법인들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다. 

모든 역사는 결국 ‘어떤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과 탐욕 그리고 행위’와 ‘어떤 사람들’의 ‘자각된 인식과 헌신, 실천’을 통해 이뤄진다. 필자는 벧엘의집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누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고, 누가 자신의 책임을 다했는지, 이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피해자 관점에서 ‘피해배상 및 개인별 지원과 탈시설’의 중요성이 요구되다. 

벧엘의집 사건에 대한 관심은 장수군이 일방적으로 ‘전원조치’를 집행하면서 증폭되었다. 장수군은 이후에도 ‘피해자 전원을 타 시설로 분산 전원조치’한 후, ‘시설폐쇄’를 추진하려고 하였다. 장수군이 내세운 명분은 ‘벧엘의집 바로 앞에 가해자가족이 살고 있으므로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 분리조치가 시급하다’는 것 그리고 대책위가 ‘탈시설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탈시설을 주장하므로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감수성과 전문성을 갖고 들여다보면 장수군의 이 같은 인식과 해결방식은 벧엘의집 사건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를 풀고자 하는 인식과 해결방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장수군이 추진하는 ‘전원조치 + 시설폐쇄’ 모델은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처리방식이었다. 안타깝게도 필자 역시 이런 해결방법으로 문제를 푸는 데 동의했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대책위 참여자 중 상당수도 자림원 사건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전원조치 + 시설폐쇄 모델’은 바람직한 해결모델이 아니다. 왜 그런지는 피해자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선 피해자 관점에서 ‘전원조치’는 ‘오랫동안 시설에서 당해온 인권침해와 피해상황이 알려지자마자, 사과와 피해보상도 받지 못한 채 또다시 다른 시설로 옮겨져 새로운 시설에 적응해야 하는 시설수용의 반복이다. 운이 좋으면 좀 더 나은 시설로 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더 나쁜 시설로 옮겨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상을 ’회전문현상‘이라고 한다. 피해자 관점에서 ’시설폐쇄‘는 탈시설 등을 준비할 거점이 사라지고, 피해보상을 요구할 대상과 공간의 소멸이다. 한편 ’시설폐쇄‘는 강력한 처벌처럼 여겨지지만 ’법인 이사진 교체‘와 ’법인취소‘가 함께 이뤄지지 않는 한 해당 법인입장에서 볼 때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시설의 건물과 재산, 정관은 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언제든 약간의 변형을 통해 사업을 재개할 수 있고, 여러 루트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법인을 팔아넘길 수도 있다. 필자의 추측이 아니라 실제로 지금까지 반복되어진 현실이다. 

그러므로 만약 장수군이 그들 말대로 진짜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려면 이제라도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사를 그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제대로 살피고, 피해배상과 남은 삶을 보다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의 주거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서비스를 연계하기 위해 도와 대책위와 협력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장수군은 피해자들을 여러 차례 만나 정말 탈시설을 원하는지를 확인해왔다. 장수군은 대책위가 탈시설로 답을 정해놓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답을 정해놓고 피해자들을 만나온 사람들은 장수군의 공무원들이다. 여러 경로로 탈시설 의지를 뚜렷하게 밝힌 사람들에게조차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장수군은 기울이지 않아 왔다. 

벧엘의집 사건에서 드러난 ‘자기결정권을 들어서 의사 표현에 어려움을 가진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가로막는 일’은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을 추진하기 시작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당분간 중요한 쟁점이 될 것 같다. 

의사 표현에 한계가 있는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욕구 조사의 진위를 둘러싼 논쟁은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진 것은 아니다. 오래전에 탈시설이 추진되어 온 서구국가들에서도 있었다. 1970년 이후 50여 년 탈시설을 추진해오면서 서구 국가들은 발달장애가 있는 시민들의 탈시설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기준들을 만들어왔다. 

일례로 미국은 2014년 발달장애인 주거지원서비스 예산 지원 원칙을 지역사회에 기반한 주거서비스 원칙(HCBS, Home and Community Based Service)로 전환한 뒤 5년의 유예기간을 두어 올해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 기준은 탈시설화된 지역사회 거주를 당연한 권리로 인정하고, 서비스 기관들이 탈시설 서비스를 제공할 때만 정부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국에서는 이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시설에 입소하려고 할 때 당사자가 시설 입소를 원하는지를 입증해야 시설 입소가 가능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벧엘의집 사건과 비교하여 새겨볼 만한 흐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