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일터를 향한 첫 걸음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의 의미와 한계
- 김동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다. 괴롭힘에 대한 금지와 규제의 내용을 담은 법률이 작년 국회를 통과했고, 2019년 7월 16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그동안 노동자 스스로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을 ‘직장 갑질’, ‘직장 폭력’, ‘괴롭힘’등의 인권침해로 인식한 후 이에 대한 대응을 꾀하거나 인권단체, 변호사 등에 요청하는 일이 많았지만 법과 제도의 부재로 인하여 잘 해결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다고 하니,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지고 현장의 노동자들이 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까.

  이번에 시행되는 법률 중 가장 큰 폭의 변화는 근로기준법의 개정이다. 바뀐 법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근로기준법은 제6장의2를 신설하여 직장내 괴롭힘을 규제하는 내용을 도입하였다. 근로기준법은 직장내 괴롭힘을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하고,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를 수범자로 하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의무를 규정하였다.

  개정 법에 따르면 사업장에서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누구든지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고, 사용자는 자신이 인지하거나 신고된 사안에 대한 사실조사를 시행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며, 조사 과정에서 혹은 조사 결과 사실이 확인된 경우 피해 노동자를 보호하여야 하고 조사 결과 괴롭힘 사실이 확인된 가해자를 징계하여야 한다. 또한 사용자는 괴롭힘 사실을 신고한 노동자나 괴롭힘 피해를 입은 노동자에게 이로 인한 불이익 조치를 행하여서는 안된다(동법 제76조의3). 이와 함께 취업규칙의 필수적 기재사항에도 “직장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에 대한 사항”이 추가되었다(동법 제93조). 근로기준법 외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도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산업재해재상보험법상 업무상 질병의 인정 기준에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이 추가되었다(동법 제37조).

  지금까지 직장내 괴롭힘의 개념과 직장내 괴롭힘 금지 의무가 일부 사업장 내 혹은 지자체의 자율적인 규범으로 도입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위와 같이 법률에 직장내 괴롭힘이 도입된 것은 최초의 일이다. 따라서 법률 개정을 통한 직장내 괴롭힘 규제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산재인정과 관련하여 보면, 기존에도 직장내 괴롭힘 사안으로 인한 산재가 인정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의 인정기준의 추가가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법률에 인정기준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재 인정범위가 다소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부족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에 직장내 괴롭힘의 금지를 규정하다보니 근로자성이 다투어지는 프리랜서에겐 이 법이 적용되기 어렵다. 또한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직장내 괴롭힘이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4인 이하 사업장에까지 해당 규정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시행령의 개정이 별도로 필요한 상황이다.
 
  사실 이 법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직장내 괴롭힘 사업장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개입가능성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에 있다.

 개정법은 남녀고용평등법상 성희롱에 대한 규제방식을 그대로 차용하여 왔지만 그 위반의 효과에 대한 조항은 일부만을 가지고 왔다. 따라서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한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처벌되는 경우는 사용자가 신고한 노동자 또는 피해 노동자에게 불이익 조치를 가하였을 때뿐이다. 사용자의 의무조항들(사실조사의무, 징계의무)이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위반시의 처벌·과태료 부과 근거 규정이 없다. 처벌·과태료 부과의 근거 규정이 없다는 것은 이에 대한 규제가 실질적으로 근로감독관의 집무에 해당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용자가 직장내 괴롭힘을 하거나, 피해 노동자가 신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조사를 하지 않거나, 가해자를 격리시키는 등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직장내 괴롭힘이 확인되었음에도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개정법상으로는 이를 적시에 직접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셈이다.

  또한 개정법에서 직장내 괴롭힘 예방을 위한 의무 교육 규정은 보이지 않는다. 직장내 괴롭힘이 조직문화에서 기인하는 경우 교육은 조직문화를 개선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직장내 괴롭힘을 예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법은 직장내 괴롭힘 교육 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럼, 현장의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변화가 올까.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어느 정도의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다. 고용관계를 일반적으로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에 -벌칙 및 과태료의 근거규정이 미비하기는 하지만- 직장내 괴롭힘 금지가 규정되었다는 사실 자체로 상징성이 있다. 금지 의무가 가해자의 조직적·우발적 괴롭힘 행위를 예방하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고, 사내 고충처리절차의 정비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을 전망할 수는 없다. 구속적 효과가 미비한데다 교육의무도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법과 제도가 그러한 지도 모르겠지만,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우리 삶에 드라마같은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법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법이 불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현장을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노동의 존엄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 법을 잘 작동시키고 한층 좋은 법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과 함께 보다 더 많이 직장내 괴롭힘의 문제를 드러내는 사회적 의제화와 공론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