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전주퀴어문화축제를 마치며
헤카
나는 에이젠더다. 자신을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정의하지 않고 ‘굳이 정의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한 사람이다. 성별로 사람을 구분 지을 필요가 없는 사회를 간절히 꿈꾸고 있다.
작년 7월, 한국에서 처음 참여한 퀴어퍼레이드는 여기가 한국인가 싶을 정도로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대낮에 시내 한복판을 거닐며 퀴어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짜릿하고도 통쾌했다.
함께 모여 프라이드를 외친다. 함께 긍정적인 감정을 공유한다. 활동가들에게는 정말 꼭 필요한 경험이 아닐까. 세상의 문제를 직면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들고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일이었다. 한번쯤 그 당연한 권리에 자긍심을 갖고,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경험이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주에서도 필요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이들이 분명 있었고, 전북대 성소수자모임 열린문에서 그 첫 걸음을 떼어주었다. 나는 그렇게 전주퀴어문화축제 기획단에 합류했다.
반가움과 이제 시작이라는 설렘도 잠시, 4월 초라는 예정날짜를 잡아둔 채, 얼마 남지 않은 준비기간에 일을 마쳐야 했다. 처음 모인 기획단원은 열 명 남짓이었다. 상시 회동 가능한 멤버가 5-6명임을 감안하면 기획단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그러나 다들 이유 모를 패기만큼은 탱천해있었던 듯하다. 모두 첫 회인 만큼 부담감이 상당했지만 그만큼 꿈도 컸다.
2월 초, 2018년에 처음으로 치러지는 전국퀴어문화축제 워크샵에 다녀온 후로는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실무과정들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업무의 경험도, 도움이 될 만한 기술도 없었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저 현생에 짬을 내어 회의에 참석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나마 다른 기획단원들의 날랜 일처리 속도와 추진력 덕분에 하나 둘 일이 진행되어갔다.
전주에서 퀴어문화축제를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는데, 첫째는 수도권이나 광역시가 아닌, 중소도시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되는 성소수자 축제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젠더행사가 자주 있는 편은 아니지만, 전주에서도 다양한 활동가들이 소수자 인권 활동의 역사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전주를 시작으로, 더 많은 지역에서도 성소수자들이 가시화 되어, 끝내는 전국에 무지개 물결이 퍼지기를 소망하며 이번 축제를 준비했다.
또한 전주퀴어문화축제는 여러 시민단체와 지역사회단체의 연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둔다. 그동안 연대로 이루어져온 노동절, 3・8여성의 날과 같은 여러 지역행사들과 함께, 이제는 성소수자인권도 하나의 행사로써 그 연대에 합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기쁜 일이었다. 전북지역에 기반한 19개의 단체가 모여 조직위원회가 꾸려졌고, 실무적으로도 행사 당일까지 수많은 조언과 도움을 받았다. 행사 후에 수고했다, 성공적이고 멋진 축제였다 라고 응원과 피드백을 주시는데, 정말 감사하고 감사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지 싶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는 것이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을 만큼 벅차고 감격스럽다. 익숙한 거리, 익숙한 풍경 속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퀴어축제라! 누군가는 매일 걷는 거리가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 수 있냐고 눈물 겨워 말했다.
이 사회는 ‘당신은 여성 아니면 남성’이라는 대단히 폭력적인 기준을 뿌리내려왔다. 성별에 따라 주민번호 자리가 나뉘고, 여느 관공서 문서들에는 여지없이 성별 란에 표시를 하게끔 되어있는 것이,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의미를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일 수 있음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사회에서 지워지고 그래서 부정당하는 우리의 존재를 계속해서 알리는 것, 이렇게 당신네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제 1 회 전주퀴어문화축제 기획에 참여하고, 사회를 보고, 퍼레이드를 진행하며 꿈을 꾸듯 행복했다. 사회에서 지정한 성별에 상관없이, 내가 나 자신일 수 있음을 알고, 나 자신으로 인정받으며 그 기쁨과 자긍심을 공유하는 경험은 성소수자에게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한옥마을 태조로를 행진하며 불렀던 노래, 기쁘고 벅찬 표정의 얼굴들, 그 자긍심(pride)의 물결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함께 모여 외치면 울림은 더욱 오래간다. 행사 당일, 핑크빛으로 지는 저녁 놀을 보며 벌써 2회를 기대하던 그 느낌이 생생하다.
단 두 가지의 성으로만 구분 짓기엔 우리는 너무 다채롭다.
[글쓴이 프로필]
활동명은 ‘헤카’이다. 본인을 ‘감성적 프로날라리’라고 소개한다. 에이젠더. 직업관은 ‘직업을 하나만 가지지 않는다’이다. 싫어하는 것 이명박.
페미니즘 학회 동행, 전북대 성소수자모임 열린문, 전북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