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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북한 (New North Korea)이 다가온다.
: 한반도 정세와 평화체제 구성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

                                                                                                   일본 테이쿄대학 준교수 이찬우
 
 40세도 되지 않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7년차에 세계를 놀래우고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안팍이 어리둥절할 것이다. 4월 20일 김위원장은 핵실험장을 폐기, 핵실험과 대륙간탄도탄 발사를 하지 않으며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는 제7기3차 당중앙위전원회의 결정을 발표하였다. 남북 정상간에는 핫라인을 설치되었으며 북한이 한반도비핵화 과정에서 주한미군철수도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도 들리는 정도니, 과연 경천동지할 일이다. 새로운 북한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북한의 자체평가로는 “지난해 국가핵무력완성을 선포한 후 우리의 주동적인 행동과 노력에 의하여 전반적정세가 우리 혁명에 유리하게 급변”했다는 것이고 “병진노선이 안아온 빛나는 결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추진해온 경제건설과 핵무력의 병진노선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고 새로운 경제집중 전략노선을 내세운 것으로 된다.
 이에 대해서는 좀 냉정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해 11월29일 북한의 화성15호 발사성공과 핵무력완성선언을 전후한 시기에 미국의 대응은,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에 더해 [제한적정밀타격(Bloody nose strike;코피터뜨리기)] 가능성도 검토되는 등 북미간의 전쟁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실로 엄중한 상황이었다. 중국도 유엔안보리의 대북한제재조치를 실제로 시행하면서 북한의 주요외화가득원인 석탄, 수산물, 철광석, 위탁가공의류 등의 수입을 전면 중지하고 석유제품 수출을 통제하는 등 미국의 대북압박에 동조하면서, 북한의 경제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남한과 일본도 북한과의 경제관계를 봉쇄하면서 북한은 핵무력 완성의 댓가로 전쟁위기가 개선되지도 않고 힘든 경제상황을 맞이한 [불편한 진실]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또한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이 바로 실효를 거두기 어렵고 전쟁을 치르기에는 핵전쟁으로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한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었다.


이 막다른 골목인 2017년에 한국에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것은 민주주의의 힘이면서 한반도 정세변화에 천운이었다. 문재인정부가 설정한 전쟁반대와 평화우선정착 전략이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로 이어지는 결실을 내오게 된 것이다. 남북간의 물밑접촉에 이어 2018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로 남북화해를 들고 나온 것은 북한의 주동적인 행동과 노력이었다.
문재인정부의 전략은 남-북, 북-미, 남-북-미, 남-북-미-중의 순서로 한반도평화정착을 추진하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그리고 동북아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남한의 의도를 뛰어넘어 북-중 관계를 먼저 개선해버렸다. 중국정부는 미국에 협력하여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는데 2018년초 변화한 상황에 당황하면서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게 된 것을 북한이 활용한 것이다. 중국의 압력에 대해 북한이 취할 수 있는 대응은 1) 중국에 협력을 요청, 2) 중국을 배제하고 남한과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 3)중국을 배제하는 듯 하면서 중국이 협력하도록 유도하는 3가지 중의 하나였다. 북한이 보인 행동은 1)이 아니라 2)를 보이면서 결과적으로는 3)이었다. 몸이 단 중국정부가 2월 중순에 김정은 위원장을 북경으로 초청하였고 대답이 없던 북한이 3월 중순에 갑자기 3월말의 방중을 제안하는 형태로 북중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그 후 중국은 사실상 경제제재를 완화해 가고 있다. 이렇게 변화한 배경엔 중-미간에 무역전쟁, 대만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중국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게 된 측면도 있다.


중국의 협력을 다시 얻고 러시아의 지원도 유지하게 된 북한이 기존의 핵무력강화 노선을 중지하고 경제에 총력을 기울이는 노선으로 [방향전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첫째 북한의 발전과정에서의 합법칙적인 요구이다. 사회주의적 [혁명과 건설]을 추구해온 북한이 혁명무력의 최고수준으로서 핵무력을 완성함으로써 그 중심이 건설, 즉 경제발전으로 이동한 것이다. 완성된 핵무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문제일텐데 핵무기의 일부를 사실상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핵폐기를 포함하는 비핵화의 댓가로 경제발전의 계기들을 국제사회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고 보인다.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 성공경험은 북한에게 좋은 본보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남한의 문재인정부와 평화정착이 가능하며 미국과 평화공존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나라사이의 평화는 평화공존이고 남북간의 평화는 평화정착이다. 연방제든 국가연합이든 남북간에 평화정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뢰를 양 정상이 가지게 된 것은 한반도에 두개 정부가 들어선 후 처음일 것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기존의 정권과 달리 북한과의 관계를 어떤 형태로든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평화정착과 평화공존의 대전제는 한반도비핵화이다. 남한과 미국이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 비핵화임을 북한이 확인하고 먼저 미래의 핵(핵실험, 미사일 실험발사)을 포기하는 주동적 조치를 취하였다.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비핵화의 큰 틀이 합의되고 종전선언과 휴전선의 비무장화, 남북교류와 평화의 비전이 선언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에서는 과거의 핵(핵무기와 운반수단)을 포기하는 댓가로 북미관계정상화의 큰 틀 합의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성공하면 중국의 대북경제협력이 본격화되고 일본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대의 위기를 최대의 기회로 치환한 북한이다. 앞으로 경제건설에서 다양한 실험이 제기될 것이다. 자주적인 경제강국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도 역설적으로 국제사회와 경제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북한정부가 알아가고 있다고 보인다. 새로운 북한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 시민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아직 한국사회는 보수와 진보 어느 쪽도 북한에 대해 제대로 알기가 부족하며 기존의 선입관에 젖어있다. 보수는 북한의 시간벌기 기만정책이라고 의심을 버리지 않으며, 진보는 북한의 변화의 진정한 의미를 몰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속가능한 남북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통일국민협약」 체결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이는 남한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 사이에 낮은 수준의 공통점 도출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협약이 만들어져도 보수는 거부하면 그만일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합의된 제도화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 시민사회에서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합의의 제도화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북한을 아우르는 높은 수준의 통일의식을 시민사회에 확산시켜나가는 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이 사라진 협약은 효력 없는 종이문서일 뿐이다.


북한에 대한 제대로 알기, 남북관계 개선 또는 통일 후 모습에 대한 각 부문의 비전만들기, 통일의식을 생활 속에서 체험하기, 남북관계의 바람직한 제도를 위한 지역공청회 등을 통해, 정부가 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통일국민협약 안을 만들어내는 시민사회의 운동이 필요한 때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북한 제대로 알자, 통일 제대로 만들자]라는 주제로 지역마다 학교마다 단체마다 공통의 항목에 대한 의견수렴과 지식전달을 통해 시민사회의 의식수준을 높이는 운동을 펼치는 것은 어떠한가.  


필자 프로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대우경제연구소 동북아시아팀 연구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을 역임함. 현재는 일본 테이쿄대학 준교수로서 아시아경제론, 국제정치경제학 등을 가르치며 정부기관, 연구소 등과 동북아시아지역에 대한 연구프로젝트를 하고 있음.

* 이 글은 2018년 3월27일에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민주노총전북본부, 전북겨레하나, 전주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주최로 열린 <남북・북미 정상회담과 한반도 주변정세분석 및 전망> 강연을 못들으신 회원님들을 위해 이찬우 교수님이 압축 정리해주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