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괴롭힘은 인간에 대한 폭력이다
송기춘(전북평화와인권연대 공동대표)
헌법 제10조에서 확인하고 있듯이, 인간은 존엄하고 가치 있으며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은 삶의 모든 자리에서 이뤄져야 한다. 노동은 삶의 자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노동이야말로 개성을 실현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과정이다. 헌법 제32조 제3항에서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노동관계에서는 노동과 자본 사이의 현저한 힘의 불균형 때문에 노동의 조건이 나빠지게 된다. 전통적인 법학에서 노동관계를 사인 사이의 계약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유로운’ 개인인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노동계약은 장시간 노동·저임금 노동·열악한 노동환경을 조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은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단결과 단결력에 기초한 단체교섭과 단결력의 행사로서의 단체행동에 대한 법적 면책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이라는 단체가 자유로운 개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것이어서 법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거나 단체의 힘으로 개인인 사용자에게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하는 것이 다중의 힘에 의한 업무방해 행위라느니 하는 반격도 있었지만,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노동을 위한 헌법적 권리로 인정되게 되었고 우리 헌법도 제33조 제1항에서 이를 확인하고 있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법률이다. 법률도 온전히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교원의 지위를 가지지 않은 조합원 몇 명 때문에 노동조합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매우 신중하게 파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업무방해죄나 감당할 수도 없는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를 피할 길이 없는 것도 이러한 법령의 문제를 보여준다. 파견노동이나 기간제 노동은 노동자의 지위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의 원칙이 관철되지 않는 노동현장에서 기간제 노동 또는 파견노동이란 노동자의 자유의 박탈이라 할 만하다. 더구나 실업상태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도 매우 부실하지 않은가. 법률을 그 자체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인 양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법률을 지금 여기에서의 다수를 점하는 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법률이라는 틀과 형식을 이용하여 관철하는 장치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런 법률마저도 그 해석과 적용과정에서 자본가나 사용자에게 편향되게 해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동법이 민법과 그 기초가 다르다는 점을 망각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노동관계가 이미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계약관계인 것처럼 해석한다.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현저한 불균형 관계가 엄연한 사실인데도 말이다. 적지 않은 난관을 뚫고 노동자가 법적으로 권리의 구제를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동현장에서의 차별 문제도 심각하다. 남녀의 성을 이유로 한 차별은 헌법이나 근로기준법 등 법률로 규제하고 있지만 노동현장에서는 교묘한 방법으로 법적 규제를 피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는 남녀간의 임금격차가 큰 편에 속한다. OECD 국가 가운데는 단연 1위이다. 직장에서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의 비율은 현저하게 낮아진다. 노동현장에서의 차별 문제 가운데 더욱 심각한 것은 노동조합활동을 이유로 하는 차별이다. 이것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를 통하여 사용자가 노동권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조합의 활동을 이유로 한 불이익취급 등은 부당노동행위가 되지만, 문제는 드러나지 않는 교묘한 방법으로 차별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더구나 복수의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사용자에게 우호적인 노동조합을 우대하고 그렇지 않은 노동조합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많다.
2016년 호남고속은 전주시 시내버스 안전경영서비스 평가에서 1위로 평가되었다. 경영합리화, 안전과 운행관리, 승객만족도 등을 평가한 결과이다.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한 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회사가 겉과 달리 속으로는 특정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에게 매우 교묘한 방법으로 차별을 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유독 민주노총 노동조합에 소속된 버스기사들에게 근무일수와 노선배치 등에서 차별을 해 온 것이다. 이 회사의 임금체계에서 만근을 초과하여 하루 더 근무할 때 27만7천원을 더 받는다고 하니 초과근무 사흘이면 83만원 정도의 임금을 더 받게 된다. 일을 덜 했으니 차별이 아니라고 반박할지 모르나 적은 임금 때문에 너도 나도 만근을 초과하여 일하고자 하는 회사에서라면 근무일수의 차이가 유독 특정 조합 소속 기사에게만 나타나는 것을 어찌 차별이 아니라고, 노동조합과 그 활동을 억압하기 위한 술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혐의는 노선 배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노선거리가 짧고 자동변속기를 이용하여 노동강도가 약한 노선에서는 민주노총 소속 기사는 배제되었다. 운행거리가 길고 운행에 어려움이 있는 노선에는 이들이 배치되었다.
이러한 호남고속 사용자의 행태는 교묘하게 노동조합의 활동을 억누르는 방법이다. 사용자가 노동자에 대해 가하는, 특히 특정 조합원들에 대한 괴롭힘이다. 이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사람의 피를 말리고 굴욕감과 분노를 낳게 하는 나쁜 짓이다. 노동자를 길들이려는 것인가?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것인가? 사용자라고 하여 노동자의 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 또한 헌법적으로 보장된 노동조합 활동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괴롭힘은 폭력일 뿐이다. 폭력은 인간성까지 파괴하고야 만다.
이러한 특정 노동조합 소속 버스 기사에 대한 차별적 대우는 이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는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기관의 방임과 방관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왜 공적인 예산 지원을 받는 회사가 이런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데 이를 방관하고 있는가?
호남고속의 민주노총 소속 버스기사들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을 입증하기 위하여 많은 분들이 수고하셨다. 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공공운수노조전북본부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그리고 여기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이분들의 수고와 많은 시민들의 관심으로 호남고속이 가장 노동권이 잘 보장되는 인간다운 일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