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게 일하기 위한 조건

최민(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 5월 28일 구의역에서 발생한 스크린도어 수리, 정비 노동자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라고 깊이 공감한 청년들이 사고 발생 현장에 추모 공간을 만들어 지켜냈다. 덕분에, 많은 시민들이 찾아가 자신의 애도와 공감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이 열렸고, 불안정노동자의 안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구의역 벽면을 가득 채운 포스트잇에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다’라는 공감이 담겨 있었지만, 사고 이후 겨우 한 달이 지나는 사이에도 공사장에서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들이,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하청 노동자들이, 제련 공장에서 일하던 하도급 업체의 노동자들이, 에어컨을 설치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갔다.

노동자들은 사고로만 죽는 것이 아니다. 김 아무개군은 군포의 특성화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작년 12월부터 6개월째 경기도 성남의 큰 뷔페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특성화고에서는 인터넷쇼핑몰을 전공했고, 전산·회계와 컴퓨터 등의 자격증이 있었지만,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전공과 전혀 다른 일이었지만, 취업률을 높여야 하는 학교에서는 이 식당 취업을 추천했다. 헬조선에서 대학 나와도 전공 살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는 정당한 의문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수습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될 수 있고, 또 큰 회사라서 여기서 1년만 일하면 4년제 대학의 조리 관련 학과에 입학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본인도 마음을 다잡았다.

처음 취업했을 때는 현장실습 명목이었기 때문에, 김군과 학교, 업체는 3자가 참여하는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표준협약서는 노동부에서 정해놓은 것으로 ‘현장실습 시간은 하루 7시간, 연장은 1시간까지 가능하다’고 돼 있다. 그러나 김군은 업체와 ‘하루 11시간 미만 근로’를 한다는 ‘근로계약서’를 따로 썼다. 그것도 서류상의 계약일 뿐이었다. 스케줄대로라면 ‘오전 11시 출근’을 해야 하지만 이러저러한 ‘벌칙’ 명목으로 2시간 먼저 나오는 일이 잦았고 오전 7시 무렵 출근하는 날도 있었다. 정리하다보면 퇴근시간인 밤 10시를 넘기는 것도 일쑤, 부통 11시나 11시 반쯤 퇴근했다는 게 친구들의 증언이다.

양식부 막내로 ‘수프 끓이기’ 업무를 담당했던 김군은 수프를 쏟아 발에 2도 화상을 입기도 했다. 3주 동안 4번 병원을 방문해서 화상 치료를 받았지만, 산재보상을 받지 못 했다. 본인이 카드로 결제했다. 부상 때문에 쉰 날도 없었다. 수포가 생긴 2도 화상이었지만, 주방용 장화를 신고 똑같이 일해야 했다.

괴롭힘도 심했다. 김군은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에서 자신이 “양식파트”에서 하는 일이 “욕먹기”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집에 태워다주며 차안에서 툭툭 치며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날도 많았다. 아버지는 ‘네가 귀여워서 그러는 거’라고 달랬다. 차라리 입대해야겠다 결심하고 상사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한 그날, 벌칙으로 9시까지 출근하라는데 1시간 지각한 날(근로계약서 상 출근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한 날), 그는 상사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은 뒤, 오후에 매장을 나가 다음날 새벽 전봇대에 목을 맨 주검으로 발견됐다. 해당 외식업체가 운영하는 식료품 공장 바로 앞 골목이었다.

“인권에 대해 배우는 그 자체가 권리다. 인권에 대해 무지를 강요하는 것이나 내버려두는 그 자체가 인권 침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노동안전보건운동가로서 “노동자가 일터에서 건강할 권리에 대해 배우는 그 자체가 권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 노동자 건강권은 갈 길이 멀다. 건강하게 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게다가 그것이 권리라는 것은 어떤 뜻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배우지 않은 채 노동 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나의 삶, 나의 몸, 나의 불편함을 기준으로 하기보다, 생산성, 생산량, 허구적인 ‘표준 작업’에 따라 일을 배우게 된다. 사회 초년생은 나에게 일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에 나를 맞추는 것을 배운다. 그게 ‘어른들의 세계’라는 것을 배운다. 거기 제대로 적응하지 못 하면 모자란 놈, 부족한 사람으로 찍혀 낙오자로 노동세계에서 배제되거나, 심지어 이 노동자처럼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거기에 제대로 적응한 노동자들이라고 무사한 게 아니다. A씨는 만 37세의 제철소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대기업의 큰 제철회사였지만, 보수‧ 정비 작업을 하는 그의 회사는 하청의 하청 업체였다. 제철소에서 일한지 벌써 5년이 넘었지만, 늘 허덕이며 살게 된다. 지난 한달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근무했다. 휴일근무, 연장근무를 해야만 실제 손에 쥐는 급여가 200만원이 좀 넘는다. 급여가 아니더라도, 불안한 고용 때문에도 쉽사리 휴일근무를 거부하기 힘들다. 쉬지 않고 일한지 한달 되는 날, A씨는 쇳물을 만드는 고로의 바람구멍 근처에서 보수 작업을 하다 탈진하여 쓰러져 사망했다. 고로 바람구멍 앞은 방열복을 입지 않으면 다가가기도 힘들만큼 뜨거운 곳이다. 고열 작업은 에너지 소모가 많기 때문에 일반 작업보다 여유 율을 높이고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도 이 젊은 노동자는 죽기 전 석 달 동안 계속 1주일 평균 62 시간을 근무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일찍이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나 부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라고 매우 포괄적으로 정의했다. 또 1995년 “모든 사람에게 건강을(Health for all)”을 구호로 내걸면서, 다양한 집단의 건강 문제를 언급했는데,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따로 서술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건강하고 안전한 작업을 할 권리와 그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넓은 범위가 아닌가 싶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직장 내에서 스트레스 받는 마음은 몸과 연결되고, 사회적 차별을 겪는 것은 결국 내 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추락, 낙하, 전도와 같은 재래형 위험이나 물리적, 화학적 유해요인으로부터 기인하는 신체적인 위험 뿐 아니라 직무스트레스나 조직 문화에 따른 정신적 문제, 나아가 직장 내 차별과 같은 사회적 조건도 노동자 건강에서 다루는 문제가 된다. 직장 안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예를 들어 여성에게 가사나 양육과 관련된 부담이 집중되어 직장에서의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구조나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면서 과소업무를 주어 자긍심을 떨어뜨리는 것 역시 그 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일이 된다. A씨의 죽음에는 고로 앞 바람 구멍에서 나오던 뜨거운 바람도 책임이 있지만, 초장시간 노동을 부른 그의 적은 급여, 탈진하는 순간까지 휴식을 요구할 수 없었던 그의 불안한 고용이 모두 책임이 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에서 말하는 이런 ‘건강’은 결과라기보다, ‘지향’이고 이런 지향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의 힘과 권리가 중요하다. 우리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은, 노동자 조직의 힘이 세고,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이다.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상정됐다는 ‘노동개악’과 ‘안전하게 일하는 세상’이 함께 갈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