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별(혐오반대)운동의 관점에서 본 4.13총선과 과제

이나라(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사무국장)

4.13총선은 소수자 인권에 있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참담한 선거였다. 우파 정권이 연달아 집권하는 동안 조직화되고 득세한 소수자 혐오의 심각성이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기독자유당 등 ‘동성애 반대, 이슬람 반대’를 내건 정당들이 등장해 차별 선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공보물, 티비 정당 연설을 비롯해 선거 운동 공간 곳곳에서 성소수자의 존재와 존엄을 부정하는 말들이 넘쳐났다.


주요 정당의 유명 정치인들도 차별 선동에 동참하는 모습도 보였다. 2월 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보수기독교계가 주최한 국회 기도회에 참석해 차별금지법 반대, 동성애/이슬람 반대를 간증했다. 새누리당 공천과정에서는 동성애 사상검증이 벌어졌다. 공보물에 기독자유당과 다름없는 소수자 차별적인 공약을 내놓은 후보들도 적지 않았다. 선거전에서 상대 후보의 ‘동성애 옹호’ 전략을 공격하는 일이 난무했다. 김무성 대표는 공개 유세에서 표창원 후보를 공격하면서 “동성애는 인륜을 파괴하는 것”, “동성애 찬성 후보는 막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소수자 인권의 문제가 혐오를 통해 정치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상황이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기성 정치권에서 혐오에 분명히 반대하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침묵하며 회피하거나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게 아니라 동성애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차별하는 것에 반대한 것”(표창원)이라며 수세적으로 대응해 오히려 ‘동성애 반대’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소수자 혐오, 특히 ‘동성애 반대’로 표현되는 성소수자 혐오가 제도권 정치에서는 ‘종북’처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된 모양새다. 20대 총선에서 주요 정당 세 곳 모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공약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20대 총선에서 갑자기 등장했다기보다 지난 몇 년 사이 거듭 확인한 것이었다. 19대 국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반동성애/탈동성애 행사가 열렸고, 차별금지법안 발의가 철회되기도 했다.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은 괴롭힘에 가까운 공격을 받았다. 동시에 서울시민인권헌장이나 대전시 성평등기본조례 등이 성소수자 혐오 선동에 의해 무산되거나 후퇴했다. 소수자 차별적인 반인권적 주장과 폭력적인 실력행사가 인권의 원칙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충북교육권리헌장, 대전학생인권조례 추진이 ‘동성애 옹호, 조장 반대’를 외치는 이들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 합의에 의한 동성 성관계를 처벌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는 법률(군형법92조6)에 대한 폐지 논의도 가로막혀 있다.


‘동성애 반대’는 단순히 종교적인 신념의 표현이 아니라 우파 정치의 의제가 됐다. 일찍이 2010년 어버이연합이 “동성애 조장하는 국가인권위 해체”를 외치며 인권위를 점거한 바 있다. 세월호 반대시위, 한일 위안부 협상 옹호 시위 등으로 유명세를 탄 엄마부대봉사단도 동성애, 동성결혼 반대 시위를 수차례 벌였다. 한편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를 공공연히 말한 인사들이 국가인권위원으로, KBS이사로 각종 공직에 들어갔다. 법무부, 교육부, 여성부, 국방부 등도 성소수자 국민의 존재와 인권을 부정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존재조차 낯선 상황에서 성소수자들이 스스로의 존엄과 인권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지 않았다. 90년대 이후 사회, 문화적인 변화와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노력 속에 성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진전되면서 인권 담론이 확대됐고,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등 제도적 진전도 일부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가 명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차별과 편견은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날 혐오의 정치는 성소수자 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우리 사회가 인권과 평등의 가치를 얼마나 업신여기는지 증명하는 것이다.


‘혐오’는 지난 2-3년 사이 사회적인 키워드로 떠올랐다. 일베 현상, 여성혐오,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을 향한 혐오, 이주민 혐오, 성소수자 혐오는 ‘헬조선’, ‘흙수저’ 같은 절망적인 사회 현실을 배경으로 창궐했다. 점증하는 혐오를 개별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위기라는 배경 속에 위치 짓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불평등하고 부패한 체제의 희생자들에게 되레 너희가 문제라고 말하는 혐오의 정치는 더 나은 삶, 더 정의로운 사회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성소수자나 이주민이 아니라 사람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체제, 그 속에서 기득권을 탐닉하는 이들이다. 차별에 저항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겁박하는 사회에서 혐오는 필수적이다.


혐오의 확산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아직까지 이에 맞선 대응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동성애 반대’나 ‘이슬람 반대’처럼 취약한 집단들을 공격하는 것이 실상은 보편적 인권의 원칙 자체를, 민주주의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소수자를 희생양 삼는 우파의 혐오 정치에 맞서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연대가 강화돼야 한다. 기독자유당의 국회진출 가능성은 섬뜩했다. 이들은 이제 국가보조금까지 받으면서 차별 선동, 혐오 조장을 계속할 것이다. 이들은 정치, 문화, 교육 등 사회 전반에서 인권과 평등의 가치가 중시되는 토양 자체를 없애고 싶어 한다.


총선 결과는 어쨌거나 사람들이 불통과 부패, 부정의한 지배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성소수자 운동은 20대 총선에서 ‘평등을 위한 한표, 레인보우보트’라는 이름으로 유권자 운동을 벌여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유권자 선언을 모으고, 혐오 정치인 낙선운동을 벌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펼쳤다. 선거에서 혐오의 목소리에 맞선 대응이 절실했기 때문에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이런 노력이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확대되야 한다. 한편 국회 구성이 달라진 것만으로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계속해서 반민주 악법과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 사회운동이 이런 시도에 맞서 싸워 우리 삶을 지켜내지 않는다면 혐오는 계속 우리 삶을 잠식할 것이다. 2014년 혐오에 맞서 서울시청에서 농성을 벌인 성소수자들은 ‘당신의 인권이 여기에 있다’고 외쳤다. 혐오에 맞서는 일은 더는 소수자 운동만의 과제가 아니다. 마침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이 다가오고 있다.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 말하고 행동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