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학생을 위한 근로기준법, 학생인권법이 필요하다

‘앞머리는 눈썹 위, 옆머리는 귀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뒷머리는 와이셔츠 옷깃에 닿지 않는 스포츠 형태.’ 이게 어느 시대 일인가 싶지만, 바로 2021년 대구의 한 고등학교가 고집하고 있는 두발규정이다. ‘교실에서는 반드시 겉옷을 벗고 교복만 입어라.’ 지난 10월 갑작스레 찾아온 한파에도 학교가 겉옷 착용을 불허해 오들오들 떨어야 했던 학생들이 있었다. 교무실에서 학생의 머리를 가격하는 교사의 행동을 곁에서 지켜보던 교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지난 6월 충남의 한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 이후 학생은 지금까지도 등교하지 못하고 있다. ‘너네가 치마를 짧게 입어서 성폭력이 일어난다.’ 아직도 이런 말로 치마 길이를 단속하는 교사들이 있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2021년 대한민국 학교의 초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무참하다.

지난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까지 6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11년이라는 세월 동안 고작 6개 지역에서만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는 사실만 봐도 학생인권의 시계가 얼마나 더디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다. 조례 제정을 시도한 경남, 울산, 강원 등지에서는 혐오세력과 ‘교권 침해’ 주장에 막혀 번번이 좌절당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은 그나마 학생인권옹호관과 같은 시정기구가 설치되어 학생들이 호소할 곳이라도 생겼다. 그러나 조례의 규범력이 약하기 짝이 없다. ‘학교 자율’을 방패 삼아 학생인권 침해를 고집하는 학교를 변화시키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홍보나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곳도 있다. 학생인권조례조차 없는 지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10월 초 발표된 경북의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는 그 뚜렷한 증거다. 전교조 경북지부 등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동학대로 분류될 수 있는 직․간접 체벌을 경험한 학생도 상당수였다.

사는 지역에 따라 학생인권이 달리 보장되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있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모든 학교에 적용되는 법률이 필요하다. ‘학생인권법’으로 불리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오랜 시간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지해온 시민들이 요구해온 법률이다. 학생을 시민으로 대접하고,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은 ‘시민의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 그 취지다. 학생인권법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근거 삽입 △학생인권 침해행위 명시 △학생인권옹호관 등 학생인권 시정기구 설치 △학생회 법제화 △학교운영위원회 학생 참여 보장을 그 골자로 한다. 학생인권 기준을 둘러싼 해석의 혼란을 해소하고 모든 시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여 학생인권 보장 책임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학생의 의견이 학교 운영에 반영될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학생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캠페인 이미지. 파란 배경에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로고가 그려져 있다. 학교 맘대로, 교육청 맘대로, 이제 그만! 학생인권법 제정하라 #1103학생저항의날 #학생인권법제정하라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몇몇 문제 학교가 남아있기는 하겠지만 요즘은 학생인권 많이 좋아졌는데 굳이 법까지 필요한가?’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근로기준법이 최초 만들어진 해는 1953년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노동기준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면서 외쳤던 구호도 바로 ‘근로기준법 준수하라!’였다. 법망을 피해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주는 지금도 존재한다. 노동환경이 변하고 노동자의 인식이 높아질수록 근로기준법의 끊임없는 갱신 또한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학생을 위한 근로기준법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인권법도 마찬가지다. 학생을 겁주고 모욕하는 통제 위주의 ‘지도’ 방식이 과연 사라졌는가. 올해 3월 전북미래교육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14년~2020년)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에 접수돼 인권침해로 결정된 사안 중 절반 가까이가 언어폭력 등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였고 그다음이 구타 등 직접체벌이었다. 스쿨미투를 통해 오랫동안 묵인돼왔던 교내 성폭력이 드러난 것이 불과 3년 전이지만, 아직도 근본적 해결은 되지 않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에 관한 학생과 교사의 민감성이 높아지면서 더 많은 차별이 학교현장에서 발견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민의 학교’가 필수적이다. 민주주의가 그릇이라면 그 그릇에 채워 넣어야 할 내용이 바로 인권이다. 학교사회에서 가장 약자인 학생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적인 학교도 불가능하다. 학생을 겁주는 교육은 겁먹은 시민을 만들고 겁먹은 시민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민주주의는 멈춘다. 지금의 교육이 가진 수많은 불평등 문제는 학생들의 저항 없이 고쳐지기 힘들다. 학생들이 가장 기본적인 신체의 자유를 보장받고 모욕과 차별 없이 생활하며 학교에 참여하는 주체로 대접받을 때, 더 많은 교육 불평등에 함께 맞서는 시민이 될 수 있다. 21대 국회에서 학생인권법안이 곧 발의될 예정이다. 발의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국회가 조속히 법을 제정하도록 시민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모아낼 때이다.

배경내 활동가가 스크린 앞에서 양손을 들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필자 : 배경내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