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육인권센터, 고용노동부와 비슷해 보여요!
김영재 기자: 전임 교육감이 학생인권을 중요시하면서 상대적으로 교사 인권은 뒤로 밀렸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을 함께 지키고 신장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서거석 교육감: “교사의 교권이 흔들리고 수업이 흔들리고 학생지도가 흔들리면 교육이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먼저 학생인권센터를 교권까지 보호하는 전북교육인권센터로 확대 개편하겠습니다.” (쿠키뉴스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2207220026 입력 2022-07-22 09:50:22 수정 2022-07-22 09:50:22)
서거석 전북교육감의 인터뷰 중 한 부분입니다. 물론 이 인터뷰 이전에도 비슷한 논의들이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로부터 있었고, 이를 한결 부드럽게 중화시킨 것이 위의 인터뷰와 비슷한 논의들입니다. 물론 이런 논의를 지지하시는 분들이 학생인권을 무시해야 한다거나 통제 중심의 교육을 해야한다는 식의 과격한 의견에 동의하시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전제는 동의합니다. “학생인권이 교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강조되었고, 이로 인해 교권침해가 증가했다.” 교권침해를 걱정하는 많은 유권자들이 이 전제에 동의했고 그 결과 현 교육감이 당선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논의를 살펴보면 틀린 전제들 또는 확인되지 않은 전제들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김승환 전 교육감이 학생인권을 중시했다는 전제는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시한 결과가 “상대적”으로 교사들의 권리보다 더 학생인권 보장 강화로 이어졌는지는 많은 분들이 따져보지 않습니다. 사실 저를 포함한 일부 학생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전 교육감이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일례로 2018년 한 체벌 사건에서 가해 교사가 충분히 반성했다는 이유에서 학생인권심의위원회는 인사상 처분을 권고하지 않고 특별교육 이수 처분을 내렸습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항의에도 학생인권센터와 전 교육감 모두 그 조치를 시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교육현장에 신호가 되었습니다. 실수로 교사가 체벌할 수 있고, 진심으로 반성하면 징계받지 않을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사안이라 이해하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이 분위기는 교사로서 학생인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직무에서 아동인권옹호자로서의 전문성을 보여야하는 직업윤리를 경시하고 학생인권은 잘 몰라도 되는 것이고 그러니 몰라서 실수해도 충분히 만회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학생의 피해는 성장하면서 잊히는 사소한 상처로 축소되고 교사의 피해는 직장을 잃게 되는 심대한 것으로 부각되기도 합니다. 이 역시 소수자의 침해를 사소화하는 사회적 경향성의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의 질문에서 교사 인권과 교권은 같은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이 둘은 같을까요? 교사 인권은 노동권, 참정권, 교육권, 개성추구권, 휴식권, 건강권 등 많은 인권의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교사 인권이라는 말은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거나 수업을 하는 상황에서의 인권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고, 앞서 언급한 인터뷰도 그렇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교사 인권을 교권과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권이 교사의 가르칠 권리라고 많이들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교사의 직무상 권한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법률상 권리는 나를 위해 쓰는 힘이라면 권한은 남을 위해서 쓰는 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검경 수사권 분리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할 권한이라고 하지 권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공무원이 국가의 위임을 받아 국민을 위해 직무를 수행할 때는 권한이라고 합니다. 교사의 가르칠 권리라는 말은 교사가 자신을 위해서 학생을 가르칠 힘이 있다고 말하는 셈이니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교권이라는 말이 선택된 이유가 교사는 학생 교육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강조하고, 그 이외의 권리는 무시하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보입니다. 성직자와 같은 교사가 존경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모든 교사가 그럴 수는 없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것이 바로 권리보장이 안되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진짜 교사의 권리를 위해서는 교권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교사에게도 불리합니다. 그리고 교권침해를 강조하다 보면 교사의 직무 상황을 벗어난 경우에서의 권리침해에 둔감해지게 되고 인간으로서의 교사의 권리 측면을 소홀히 다루게 되어 더욱 교사에게 불리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육인권센터로 명칭변경하는 것 자체의 문제점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예전에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로 명칭변경하고 업무도 근로감독을 위주에서 고용지원의 영역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을 두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명칭변경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노동운동이 성과를 많이 가져가려고 하여 갈등이 생겼고 이 부작용을 막기 위해 노사 간 상생을 통해 성과 키우기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많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미 많은 정부 부처들이 기업활동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노동부가 노사 간 상생을 주장하며 기업의 입장에서 고용을 말하는 것 자체가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후퇴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학교 내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세워진 학생인권센터에 대해 학생의 인권만 강조한다는 비판과 학생인권과 교권을 아우르는 교육인권센터 설립을 논의하는 자체가 이미 학생의 권리 보장을 후퇴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근 페미니즘을 공격하며 이퀄리즘(남녀의 권리를 모두 아우르는 사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체가 없는 용어)을 주장하는 것,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에 대해 All Lives Matter(백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다)로 대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생각해보면 학교 내 교육활동 특히 수업활동을 돕기 위해 교육청이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제 겨우 심각한 권리침해에 대응하는 작은 센터가 운영되고 있을 뿐인데 이마저도 교육인권이라는 말로 가리는 것이 학생인권이 처한 현실에 합당할까요? 현재도 학생인권침해 사안이 발생하면 조사과정에서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고, 현실적 행정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학생 인권의 측면에서 판단한 적극적 결정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이를 이유로 일부 조항이 사문화되어서, 어떤 교사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학생의 성적 지향에 대해 차별적 발언을 하는 경우에도 일말의 경고조차 받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인권센터가 확대개편되어서 교권도 충분히 보장하겠다고 하면 정말 학생인권도 교권도 함께 좋아질까요? 이미 맥락상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적으로 보면서 서로 상생하자고 말 만하면 상생의 결과가 저절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고용노동부가 지금 그렇듯이 말입니다.
필자 : 새시비비 - 이상한(Sassy: 새시) 비남성, 비성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