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지키며 함께 사는 이야기_〈돌들의 춤〉

지난 3월 강정마을에 살고 있는 지킴이들은 <돌들의 춤_강정에 사는 지킴이들의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강정에 살고 있는 이주민이자 평화운동가들이 자신들의 삶의 경험을 스스로 인터뷰해 엮은 책으로 지난 10년간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연대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각자의 삶의 공간을 떠나 강정에 뿌리내리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다양한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지킴이’라는 형태의 활동은 강정이 유일하지 않지만 10년 넘게 다양한 사람들이 그룹을 만들어 운동을 지속하고 있는 곳은 드물 것이다. 이 책은 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지킴이 11명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삶의 여정을 보여주며 연대, 함께 살아가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학졸업 후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했어요.(중략) 시험으로만 내 가치가 매겨지니까 힘들었어요. 시험에서 떨어지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무용한 사람이 되니까요. 그때 강정소식을 트위터에서 보게 됐어요. (중략) ‘내 눈으로 봐야 겠다’는 생각에 혼자 강정에 갔어요.” (p95, 혜영)

“초기에 공사 저지를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고 그러기 위해서 직접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와중에 경찰들, 용역들과 대치가 생기고 현행법상으로 업무방해라고 하는 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죠.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어요.”(p56, 하쿠)

“연대자들은 공사장 정문을 막고, 경찰은 우리를 고착시키고 할 때였어요. 순간 ‘어디서 봤더라...’ 하는 얼굴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내 시선을 피하는 것 같더라고요. 가슴이 철렁해서 얼굴을 돌려 버렸어요. 혹시나 했는데 작은 아버지 아들, 사촌동생이었어요. 그 이후 1년 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같이 있었어요. (p30, 정선녀)

돌들의 춤 책 표지 클로즈업
돌들의 춤 표지, 유튜브 채널 〈Gang-Jeong Il-Gi〉 갈무리

각자의 이유와 선택으로 머물게 된 강정에서 매일 진행되는 오전 7시 생명평화백배와 11시 미사, 12시 인간띠잇기를 하며 비폭력 저항행동을 이어왔다. 격렬하고 지속적인 국가 공권력의 폭력은 해군기지 반대라는 구호로 뭉쳐있던 사람들을 서서히 찢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2016년 2월 해군기지는 결국 완공되기에 이른다.

“공사가 완공되는 시점이 다가오고 반대운동의 미래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마을주민들이) ‘해군기지 결사반대’라는 자신들이 해온 말을 자신이 엎어야 하는 상황들이 오니까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그런데 지킴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죠. 아주 소수라도 ‘결사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들과 가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p71, 테라)

“강정에 살다보면 내가 원하지 않는 질문이나 이야기들을 듣는 경우가 많아요. “다 완공됐는데 왜 아직 있느냐, 강정투쟁은 다 끝난 것 아니냐” (중략) 그 어떤 싸움도 싸움의 주체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누가 봐도 진 싸움이라고 해도 싸움의 주체가 한 사람이라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싶어요.” (p143 호수 정주)

“우리 안에서 내가 싸우려고 하는 어떤 것의 모습을 보았을 때 제일 힘들었어요. 군사주의로 확장되는 가부장제랄지,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배제나 폭력이랄지 이런 것들과 싸우려고 강정에 있는 거잖아요. (중략) 그런데 내부에서 평등이 이뤄지지 않을 때 환멸을 느껴요.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마음과 믿음을 주는 관계를 맺었는데,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함께했던 일들이 순식간에 의미를 잃는 것 같았어요.” (p195, 그레이스)

해군기지 완공이라는 외부적 변화는 물론이고 그 영향 속에 투쟁 공동체의 다양한 차이와 갈등이 드러났다. 활동의 방향과 철학, 입장의 변화 속에서 상처받기도 하지만 강정이라는 현장을 지키며 살아가는 힘은 바로 지킴이 공동체라고 말하고 있다.

“강정에 산다는 것은 내겐 도전이에요. 여기 삶 자체가 그래요. 일반적인 삶이 아니라 활동가로 사니까요. 사람들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여기서는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목소리를 내요. (중략) 강정에 살기 때문에 많은 현장의 소리에 열려 있게 되었어요.” (p163, 반디)

“다양한 활동과 연대하니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요. 평화에 대한 상상을 표현하며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를 지지하는 것을 배우는 현장이 강정이에요. 다양한 경험들이 한 곳에 쌓여가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 역사를 바탕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특별한 장소인 것 같아요.” (p89, 카레)

“기지가 만들어 졌으니 기지 폐쇄 운동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너무 거대하고 멀게 느껴지잖아요. 길게 바라보면서 우리가 같이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고 행동하면서 서로 안 맞더라도 함께 함께하는 경험을 쌓다보면 ‘언젠가 해군기지를 폐쇄하는 그런 활동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중략) 새로 만나는 사람이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든 계속 만나는 사람이든 따뜻하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p223, 이상)

“사람들과 한 공간을 숙제처럼 안고 있게 되니까 그 공간이 삶의 거점이 되고 고향이 됐어요. ‘해군기지’라는 숙제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연결고리가 된 거죠. 10년 전에 강정에 왔을 때를 생각하면 그때는 아주 소수였어요. 불이 거의 꺼져 있었죠. 하지만 이 투쟁을 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언젠가 불은 다시 피어오른다는 것을 배웠어요. 운동이 지치고 소강상태가 된 것으로 보일지라도 얼마든지 다시 피어오를 수 있어요.” (p 129, 최성희)

“세상은 분쟁과 폭력 탐욕으로 가난한 삶의 자리를 침범해 올 것이다. 우리는 밟혀도 죽지 않으려고 힘을 내는 잡초의 생명력처럼 당당히 맞서며 노래하고 춤을 출 것이다.” (p231, 오두희)

사회변화를 위해서 어디에서나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있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고 바꾸고 싶은 것이 있는 그 어디든 현장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강정지킴이들의 이야기는 강정이라는 특별한 공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를 꿈꾸고 기대하는 그 누구에게나 공감을 줄 이야기이다. 단단하지만 무겁지 만은 않은 돌들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 주시길! 그리고 그 평화의 춤을 함께 출 수 있기를!

딸기 (강정평화네트워크, 평화바람)